사실, 그다지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앞두고, 한번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끄적끄적 해 보지만, 한문장 한문장 넘어가기가 쉽지 않네요.
작년, 구정을 며칠 앞둔 2월의 어느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시며, 직장암 말기라고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들려왔고,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소식을 전달 받으니 약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말기라는 말의 위기감, 당장 앞으로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뒤에, 아버지를 잃을 거라는 슬픔.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쳐왔어요.
처음에 갔던 대구의 병원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었지만, 서울 아산 병원으로 이관후, 전이가 많이 되진 않았으니, 방사선 치료 후에 수술을 진행 해 보는 걸로 결정이 났고, 두달여 간의 방사선 치료가 지나가고, 5월 22일, 수술이 진행되었어요. 힘들고 긴 수술이었지만, 수술 자체는 잘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는 너무나 여윈 모습이 안타까웠고, 배에 남은 수술자국은 수술의 험난함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며칠 뒤, 일단 한 달 정도의 회복기간을 가진 다음,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하고 퇴원하셨지만, 체력회복이 늦어지면서, 항암치료는 한달, 한달 뒤로 미뤄졌고, 방광과 신장 쪽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어요. 그리고 몇달 뒤, 추석을 즈음하여, 다시 아산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몇 가지 시술과 검사를 반복한 뒤, Give up 선언을 받아들고 말았습니다.
수술로 제거한 복강 안에 다시 암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고,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는 말을 들으니, 그아말로 아찔한 기분. 결국, 10월 21일, 대구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관하기로 했습니다. 수술이 있은 지, 5개월 만의 일이었어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매 주말 대구를 왕복하며 아버지를 뵙고,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게 고작이었고. 결국, 12월 11일 저녁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고, 서둘러 준비해서 내려갔지만, 대구에 도착했더니 이미 장례식장에 계셨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사실은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싶은 마음이 한가득. 벌써 그 일로부터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허전하고, 그 일들을 회상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대구로 내려보내기 얼마 전, 선영이를 아버지께 인사시켜 드렸던 것 정도? 주말에 밖에 볼 수 없음에도, 주말마다 대구에 가야하는 나를 기다려 주고, 계속 힘이 되어 주었던 선영이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
시간은 흘렀고, 49제 이후 상견례를 하며 준비에 속도를 붙인 우리는, 앞으로 100일 뒤, 9월 28일에 결혼을 합니다.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기분이지만, 약간은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잘 해쳐나갈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